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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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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쇄마당 작성일18-03-21 15:57 조회6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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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상 / 새한정밀인쇄 회장


대구 출신 톱스타 송혜교가 지난달에 미쓰비시 자동차 중국 CF 모델 제안을 받았다. 중국내 KBS2 「태양의 후예」 신드롬에 힘입어 모델료가 대단한 액수에 달했다는데, 미쓰비시는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사람들의 강제노역을 시킨 전범기업임으로 미쓰비시 자동차를 위한 모델을 할 수 없다고 제안을 거절하여 개념 배우로 송혜교가 미디어로 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 인쇄인에게는 미쓰비시가 매우 친숙한 인쇄기 제조회사이다. 상당수의 우리나라 인쇄소가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생산한 인쇄기로 인쇄업을 꾸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쓰비시 E 시리즈, 미쓰비시 F 시리즈, 미쓰비시 H 시리즈, 미쓰비시 다이아 시리즈의 4색기, 5색기, 6색기 등 수 많은 미쓰비시 인쇄기들이 우리나라 인쇄소에 설치되어 미쓰비시와 우리 인쇄소는 불가분의 관계를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어서 송혜교의 CF 모델 거절이 우리 인쇄인들에게는 곤혹스런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필자가 10여 년 전 본란 ‘인쇄이야기’에서 “미쓰비시 인쇄기의 기계소리”라는 제목으로 전범 기업 미쓰비시 인쇄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우리 인쇄소 이야기를 한 번 다룬 적이 있다.  당시 이야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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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쓰비시 인쇄기의 기계소리
 「1945년 8월 9일 일본의 나가사키 하늘에 느닷없이 거대한 버섯구름이 솟아오르면서 원폭이 작열하고 15만의 사상자를 내면서 일본은 며칠 후 8월 15일,
항복을 선언하고 우리는 광복을 맞는다. 그런데 미국은 왜 나가사키를 히로시마 다음의 원폭지로 택했을까?
 그것은 나가사키가 일본의 군수산업재벌 미쓰비시가 경영하는 군수산업의 요람이었기 때문이다. 미쓰비시 재벌 산하의 나가사키 병기제작소에서 태평양 전쟁에 사용된 어뢰의 80%가 생산되는 등 군수 재벌 미쓰비시를 껴안고 있던 나가사키에는 그렇게 원폭을 맞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는 수 만 명의 한국인이 징용으로 끌려와(필자의 형도 일제의 징용에 끌려가 탄광에서 일해야 했다) 미쓰비시 중공업이나 탄광에서 노예처럼 일하고 있었고, 원폭의 날 만 명이 넘는 조선인들로 목숨을 잃게 된다. 한 일본인이 회상한 그때의 한국인 희생자에 대한 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원폭이 떨어진 후, 가장 늦게까지 길거리에 남아 있던 시체들은 조선인이었지요. 까마귀가 하늘에서 날아들어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조선인들의 시체의 머리에 내려앉아 그 눈을 쪼아요. 까마귀가 눈알을 먹는 거예요.” 작가 한수산은 나가사키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원폭 피해를 입은 한국인 징용자들을 다룬 소설“까마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원자폭탄을 맞은 조선인들은 모국어로 울었고, 모국어로 신음했다. --- 그 어떤 일제의 고통도 질곡의 세월도 이 모국어를 빼앗아가지 못했다. 일본 구원대는 ‘아이고, 어머니 어머니 - 어머니’하고 부르짖는 조선인들을 결코 병원으로 옮겨주지 않았다. 조선말을 하는 그들에게 물도, 먹을 것도 주지 않았다. 방공호에서 조차 그들을 내쫓았다.” 이들의 시체는 8월말까지 버려졌다가 태풍과 함께 빗물에 쓸려 바다로 떠내려갔다.

 한편 미쓰비시 중공업의 사사(社史)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어뢰의 완성에 성공하고, 이들 어뢰의 제작 총수는 2천 6백99개에 달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사용된 어뢰의 80%가 바로 나가사키에서 만들어 졌던 것이다. 이어 특공병기라고 일컬어지는 신병기 개발에 전념하던 중 원폭을 맞으면서 우리나라 어뢰 제작사에 위대한 공적을 남긴 나가사키 병기제작소도 한 순간에 말살되고 말았다.”

 이렇게 말살된 미쓰비시 중공업은 전후 50년 화려하게 부활하여 일본 중공업의 근간이 되고, 군수 산업은 물론 민간 기계 분야에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인쇄기계 분야에서도 일본의 또 하나의 인쇄기 회사 고모리와 더불어 독일의 하이델버그, 게바우 등의 회사와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우리 인쇄소들은 막대한 외화를 지불하고 너도 나도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제작한 인쇄기를 구입한다.  필자의 인쇄실에도 미쓰비시 4색기와 5색기가 한 여름 더위 속에 아래층 인쇄실에서 쉬지 않고 돌아간다. 피딩 유닛에서 용지들이 빨려 들어가는 소리, YMCK 각 유닛에서 판통, 압통 돌아가는 소리 딜리버리에서 완성 인쇄물이 쌓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 소리 속에 무자비한 일본인 작업 감독 아래서 미쓰비시 중공업 군수 공장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다 원폭 피폭으로 길 거리에 버려져 물 한 모금 얻어 마시지 못하고 죽어가던 수많은 조선인들의 신음 소리가 섞여 있는 것 같은 환청(幻聽)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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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 년 전에는 우리 조선인들의 신음소리가 섞인 것 같은 환청을 들으면서도 미스비시 인쇄기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자조(自嘲)할 수밖에 없었는데, 한류(韓流) 스타 송혜교가 거대기업 미쓰비시의 CF 모델 제안을 당당히 거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인쇄인도 미쓰비시 인쇄기에 대한 선호를 바꾸어야지 않겠는가? 다른 인쇄기 쪽으로 선호를 바꾸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인쇄기 제조 업계가 수 십 년 전에는 스웨덴의 SOLNA, 이태리의 얼렐리아, 스위스의 칼라멘탈, 일본, 독일, 미국의 여러 인쇄기 회사들의 인쇄기가 경쟁적으로 출시되었는데 수 십 년간 치열한 경쟁과  M&A가 이루어져 일본과 독일 두 나라의 인쇄기 회사만 살아남아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였고, 미쓰비시가 그 한 축을 이루고 있어서 인쇄기의 가격이나 AS면에서 이웃나라 일본 인쇄기가 독일 회사들보다 여러 장점을 보이고 있으므로 한국 인쇄소의 인쇄기 판매를 미쓰비시가 석권하게 되었다. 송혜교처럼 미쓰비시를  딱 잘라 거절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군함도>
일본 나가사끼항에서 18km 떨어진 하시마 섬. 군함을 닮아서 군함도로 불린다. 미쓰비시가 해저석탄을 캐기 위해 개발한 섬으로, 지하 1km가 넘는 해저탄광이 있다. 800명이 넘는 조선인이 강제 징용되어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채, 고된 노동과 열악한 환경으로 수 많은 조선인이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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