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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한국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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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쇄마당 작성일20-08-07 14:12 조회1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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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사건

대한민국의 봄은 남녘 제주의 노란 유채꽃에서 시작되어 만개한 벚꽃이 4월의 창문을 열어 봄이 왔음을 알린다.
그러나 우리의 봄은 되돌아 돌이켜볼 봄이 있다.
바로 제주4·3 사건.

말 하기도 말 할수도 없었던 너무나 끔찍하고 잔혹했기에 가해자도 피해자도 말을 잊어야했던 제주4·3 사건.
그래서 였을까?
70주기를 맞아서야 재조명 되고 급기야 대통령이 공식적인 사과를 하므로써 그동안 복받쳐 응어리진 한들이 낙화하는 꽃잎처럼 한꺼번에 흩날린다.
 
필자가 이렇게 표현하면 혹자는 네가 6·25를 아느냐?
네가 공산주의를 아느냐?
혹은 너는 좌파구나 라고 딱지를 붙일 것이다.

필자는 이 기고문에서 좌우 이념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좌우 흑백의 이념은 의미를 잃은지 오래다.
그 이유인 즉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으냐?
옳다라는 명제에는 이롭다는 전제가 있고, 이롭다는 것은 객체가 아닌 전체, 즉 홍익인간의 우리 민족사적 근본이념이 담겨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제주 4·3 사건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경찰과 서북 청년단 등 우파가 행한 제주도민에 대한 탄압에 대항하여 제주도민들이 1948년 4월 3일을 기해 일제히 봉기했다. 폭력적 탄압 중지, 단독 선거 반대, 단독 정부 반대, 민족 통일, 미군정 반대, 민족 독립 등의 정치적 구호를 내세웠다. 미군정은 군을 투입했고 진압 과정에서 약 28만 명의 도민들 중 약 10%에 해당하는 3만여 명이 군·경 토벌대에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발 1년여 만인 1949년 봄에 종결되었는데, 언급 자체를 금기시하다가 1990년대 들어서야 역사적 재조명 되었고, 2000년 1월 국회에서 '제주4·3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진상 조사와 피해자 파악이 실시되었다.



■피카소-한국에서의 학살

20세기가 낳은 세기적 예술가 파블로 피카소.
그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y) picasso〉 (1881~1973).
그는 스페인 태생으로 독일의 나치군이 스페인을 공습하자 '게르니카' 라는 작품으로 전쟁의 잔혹함을 화폭에 담았는데, 독일의 나치군이 피카소의 집에 들어와서 마침 그렸던 '게르니카' 작품을 지목하며 “당신이 그렸나?? 라고 다그치자, 피카소 왈“아니 당신들이 그렸소? 라고 대답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림)
1937년 피카소 작 '게르니카 Guernica'
1937년 4월 26일,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소도시 게르니카를 독일 콘도르 비행단이 무차별 폭격, 1,54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작품이다.


이처럼 피카소는 자신이 목도한 전쟁의 참상을 '게르니카'라는 작품으로 옮기며 전쟁과 인간의 잔혹함을 고발 하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모티브는 1950년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중 1950년 10월 황해도 신천군에서 벌어진 양민학살의 참상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황해도 신천군민의 1/4에 해당하는 3만5천여명이 희생된 양민학살사건으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비극인 것이다.

우린 6.25를 전후하여 제주4·3사건ㆍ황해도 신천사건ㆍ거창양민학살ㆍ충북영동군 노근리사건 등등 반공과 민주주의 수호라는 이름아래 자행된 반인륜적 범죄를 국가가 주도하여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고도 70년 세월을 눈감아 왔다.
어디 그뿐인가 피해자였던 그들을 보듬고 사과 하기는 커녕, 오히려 빨갱이라는 사상과 이념으로 포장하여 그들의 삶을 철저히 파괴시켜 왔음을 최근에서야 되돌아 보게 되었다.

(그림)
1951년 피카소 작 '한국에서의 학살 Masacre en Corea'
이 그림의 소재는 1950년 신천학살 사건으로 알려져 있고, 반공 우익단체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상징한다.
2002년 4월 21일 방영된 MBC-TV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57회 「망각의 전쟁, 신천군 사건」에 따르면,신천군 사건이 미군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확증은 찾지 못했으며, 신천 지역의 반공 청년단에 의한 좌우 대립의 비극적 학살극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진)
북한의 신천박물관 안에 세워진 사백어머니묘와 백둘어린이묘.

피카소가 한국에서의 전쟁을 그림으로 그렸다는 사실 자체를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
그도 그럴것이 '한국에서의 학살'이란 피카소의 작품은 곧 반공법 위반으로 그 어느 누구도 발설이 금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을 그릴 당시의 피카소는 프랑스 공산당원이긴 하였지만, 작품에서 드러나는 전쟁의 참상은 이념의 잣대를 뛰어넘어 누구나 공감이 가는 반전과 평화의 상징임에는 틀림이 없다.
 
필자도 제주4·3 사건과 관련하여 자료를 찾던 중, 피카소가 한국전쟁을 소재로 전쟁의 참화를 고발하고 반전을 꾀하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피카소가 한자 까지 공부했다는 사실이다.


■피카소와 갑골문자

피카소 그가 말하기를“내가 중국인으로 태어났더라면 나는 화가가 아닌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림을 쓰고 싶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1900년초 갑골문자의 발견이 유럽에 소개되고 전세계는 갑골문자의 선풍과 함께 순회전시는 물론 갑골문자를 손에 넣기위해 각축전이 벌어질 정도였고, 상당수의 갑골문이 영국·미국·일본 등지로 팔려 나갔으며, 그로 인해 화가였던 피카소의 눈에 그림이나 다름없던 갑골문자는 뜻하지 않은 미술 교과서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사진) 갑골문자

알다싶이 갑골문자는 오늘날 한자의 원형으로써 상형문자, 즉 그림에 가까운 문자이다.
이러한 그림문자인 갑골문자가 유럽에 소개되며 선풍을 일으켰으니, 천재화가인 피카소의 눈에는 교과서나 다름없이 크나큰 영감과 함께 화풍에 영향을 주었다고 판단된다.
“그림을 쓰고 싶다? 는 그의 말에 갑골문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인할순 없을 것이다.

갑골문자 하면 은나라를 지칭하게 되는데, 사실 우리는 은(殷)나라라고 하기보다는 상(商)나라라고 하여야 한다.
이유인즉, 상나라는 우리의 겨레인 동이족이기 때문이다.
은(殷)나라 라는 명칭은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상나라를 격하·비하하는 뜻으로 쓰였기에 그렇다.

중국의 고고학자 부사년이 말하기를“상나라는 동북쪽에서 와서 흥하고 망한 뒤에는 동북으로 되돌아갔다? 라고 했으며, 요녕성 문물연구소 연구원 곽대순은“상나라 도성이 동북으로 13도정도 중심축이 기울어진 것은 전형적인 상나라 도성의 방향으로, 이는 고향 발해연안에 대한 짙은 향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중국 역사서 사마천의 사기중 공자세가편에 “나는 본시 은나라 사람이었다 (予始殷人也)" 라고 기록되어 있어 공자 본인이 은나라 후예임을 밝히고 있으며, 당시 주나라가 공자 자신이 주장하는 것들이 정치에 반영되지 않았음으로 공자가 제자에게 이르기를 “나는 구이(九夷)로 가야되겠다. 구이는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이다? 라고 하였다고 사기의 세가 공자편에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공자는 상나라 후예요 동이인임이 분명하다 하겠다.

갑골문 상형문자가 꼭 상나라 지역이었던 중국 하남성 안양시 소둔촌 지역에서만 발굴되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는 물론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발견이 되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갑골문자

미국의 존 러스캠프(John A. Ruskamp Jr) 박사의 '아시아의 울림(Asiatic Echoes)' 이라는 책에 소개된 암각화 중, 주(舟) 화(禾) 국왕(國王) 대갑(大甲) 등 많은 상형문자가 존재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중 대갑(大甲)이란 글자는 중국 상나라 3대왕의 이름었음이 밝혀졌다.
결국 우리민족 동이겨레는 오늘날 러시아의 캄차카반도를 거쳐 알류샨 열도의 섬들을 이용 알래스카를 경유하여 아메리카대륙에 까지 진출하면서 마야. 잉카. 아즈텍 같은 수 많은 인디언문명을 남기고 있다.

어떠한 이유로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우리 민족 동이겨레일까?
그들의 언어나 생활습속이 우리와 똑같이 일치하는 다양한 문화가 앞서 언급한 상형문자처럼 존재한다면 여러분은 믿을수 있을 것인가 ?


■우리역사 바로알기

피카소의 그림을 제주4·3사건에 견주어 소개하다보니 역사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우리는 일제강점에서 국토는 찾았지만 우리의 혼과 정체성인 역사는 아직도 식민지 상태다.
일제에의해 왜곡되거나 조작된 가짜역사 한반도 식민사관을 버리고 우리의 참역사를 찾아 역동적이고 찬란했던 우리겨레의 영광을 다시한번 꿈꾸어야 할 것이다.

지면이 허락된다면 '우리역사 바로알기' 라는 주제로 일본이나 중국에 의하여 왜곡조작된 것들을 실제 우리역사에 견주어 밝혀보고 싶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구자빈
모든인쇄문화사 대표 / 前대전충남인쇄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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