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월간인쇄마당 > 주요기사 기사텍스트 위의 이미지나 pdf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활판인쇄박물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인쇄마당 작성일20-08-20 20:16 조회281회 댓글0건

본문

살릴 활(活),
납활자 3천5백만 자로 이어가는 활자 종주국의 위상
파주출판도시 <활판인쇄박물관>


매년 9월의 14일은 '인쇄문화의 날'이다. 인쇄문화의 날은 1447년 세종대왕이 최초의 한글 금속활자로 『석보상절』을 찍어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 인쇄업계가 1988년에 제정한 날이다. 이날 정부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인쇄문화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자에게 표창과 포상을 시행하고 대한인쇄문화협회에서는 인쇄문화대상을 시상한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는 인쇄단체 및 인쇄인들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다양한 인쇄문화축제와 전시박람회도 열려, 활자 종주국으로의 자부심과 인쇄문화산업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날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위에서 언급한 『석보상절』은 세종의 명으로 수양대군이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설법을 담아 편찬한 것으로,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최초의 책이다. 많은 고서들 중 『석보상절』이 특별히 우리의 인쇄 역사에서 큰 의의를 갖는 것은 모두 구리로 주조된 최초의 한글 금속활자본이라는 점에 있다. 당시 세종은 인쇄 속도를 높이기 위해 신하들에게 새로운 활자를 만들게 했는데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바로 조선의 대표 활자인 갑인자(甲寅字)이다. 한자 활자인 갑인자는 1434년 7월부터 두 달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제작 수량은 대, 소자 합해 약 20여만 자이다. 또 이때 사용된 한글 활자는 한글 창제 이후 최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그 모양이 현대의 고딕체와 유사하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활자는 모양이 이전의 것보다 반듯하고 활자판의 짜임새가 좋아 조판 속도가 빨라졌고, 하루에도 수십 장을 인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_한 나라와 시대의 문화 수준의 척도가 되는 인쇄술
책, 책은 한 시대의 문명이 후세로 이어지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인쇄술의 발전 정도가 한 나라와 시대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나라에서 그들 나름의 여러 의사소통 부호를 고안했다. 그 가운데 문자는 말이 가진 순간성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널리 전파하기 위해 대량으로 재생되어야 했다. 따라서 인쇄술은 한 나라와 시대의 문화 전승 행위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미 삼국시대 이후부터 목판인쇄술이 실용화되었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어 보다 경제적이며 생산성 높은 출판을 가능하게 한 우리 민족의 문화적·과학적 우수성은 충분히 설명된다.

우리 선현들은 오랜 옛날부터 글을 숭상하고 책을 아끼는 문화를 소중하게 여겼기에 인쇄술은 나날이 발전을 거듭해왔고, 지금도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최고의 기술력과 최신의 장비들로 인해 급변하는 인쇄 환경에서 우리의 전통 인쇄 방식인 활자 인쇄는 자칫 ‘낡고 귀찮은’ ‘구닥다리’로 저급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여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낡은 인쇄기와 납 활자, 그리고 주름 깊은 어느 장인의 손까지, 그것들 없이는 아마도 현재가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행스럽게도 누군가에게는 잊고 살았던 지난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다시 꿈꾸게 하며, 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경험과 배움의 자리가 되는 유용하고 아름다운 공간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바로 지난 2016년 파주 출판도시에 문을 연 활판 인쇄 박물관이다. 이곳은 사람들이 책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염려한 몇몇 작가와 지식인, 예술가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또 세계 최초의 활판인쇄국이자 가장 우수한 제책 기술을 지닌 우리나라에서 사라져가는 활판인쇄술과 오침제본술을 안타까워하는 출판인쇄인들이 힘을 모았다.


_활자공장 제일활자의 51년, 인쇄공장 봉진인쇄의 48년이 오롯이 녹아든, 민간주도의 살아있는 박물관
무려 25톤, 한글은 물론 알파벳의 명조, 고딕체부터 일본어와 한자까지 망라한 약 3천5백만 자의 활자와 자모, 주조기는 우리나라의 마지막 활자 제조공장이자 판매점이었던 전주 제일활자(대표:김태인, 김명식 선생)에서 옮겨왔다. 기본장비인 순수 국산 활판인쇄기와 재단기 등은 2016년까지 대구의 봉진인쇄소(대표:김동구 선생)에서 가동되던 현역들을 옮겨왔고, 활판인쇄물 가공에 필요한 정합기와 접지기 등 제책 장비들은 충무로와 광주 등 전국을 뒤져 모았다. 또한 인쇄에 쓸 전통 한지를 만드는 조지소(造紙所: 1415년 조선 태종이 설립한 국립 종이 제조공장)를 갖춤으로써 활자 공장, 인쇄소, 제본소, 종이공장 등 활판인쇄 방식의 책 제작에 필요한 네 공정을 모두 구비하였다. 1980년대 옵셋인쇄의 등장으로 활판 인쇄 기법은 완전히 사라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왕년에 우리나라 인쇄업계를 신명 나게 이끌었던 낡은 활자와 장비들이 다시 살아나, 활자 종주국으로서의 우리의 위상과 옛 인쇄 기법의 역사를 다시 세우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활판인쇄박물관에 있는 모든 인쇄장비들은 다 실제 가동하는 살아있는 기계들이다. 박물관 설립을 주도한 계간 아시아 방현석 주간은 "이곳은 고물 기계를 가져다 놓은 박물관이 아니라 기계들이 모두 작동되고, 직접 시연까지 해볼 수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활판인쇄 장비를 전시하거나 관련 기술을 전수하는 곳은 몇 군데 있지만, 전시한 장비를 제대로 활용하는 시설로는 유일하다는 것이 박물관 측의 설명이다.

_개관한 해에는 활자 인쇄 방식을 이용한 첫 번째 시선집 『시를 새기다』를 출간
활판 인쇄박물관은 한국 전통의 활판인쇄 장비 및 기술, 인쇄물을 수집하는 노력 외에도 우리의 문학을 새롭게 하고 창작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실제로 개관한 해에는 활자 인쇄 방식을 이용한 첫 번째 책으로 윤동주·백석·이상 등 한국 대표 시인들의 작품 16편을 영문 번역과 함께 실은 『시를 새기다』를 출간하였다. 언제나 머리맡에 두고 읽고 싶은 한국 시의 정수를 뽑아 활판인쇄를 한 후 전통오침제본으로 만들어 진 시선집은 한정판으로 제작되었다.  컴퓨터로 제작되는 현대방식의 책과는 달리 활판인쇄는 필요한 문자 하나하나를 납으로 제작하는데, 제일 작은 활판은 명함용, 제일 큰 활판은 신문의 제목용이다. 그 쓰임에 따라 하나의 글자마다 일곱 가지의 크기를 갖춘 활자로 만들어져 숙련된 식자공이 손수 그것을 짜 맞추고 한지에 인쇄하는 방식의 공정을 거치면 내구성 역시 훌륭하여 그 수명도 백 년 이상 간다. 오늘날 찾아보기 힘든 활판인쇄기가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한 장씩 시를 찍어내는 모습은 거기 담긴 시들만큼이나 무척 아름답다. 저마다 다른 잉크의 농도가 투박하면서도 편안한, 아날로그적 감성을 오롯이 재현해주는 것은 덤이다.

또한 활판인쇄학교와 연계하여 관람객이 직접 필요한 납활자를 고르는 문선, 배치하는 식자 등 전 과정을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마련해 시민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서려 노력한다. 특히 지난 3월 1일,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 KBS 역사 다큐드라마 '그날이 오면'의 1부 '인쇄기를 돌려라'에서는 당시 일제의 눈을 피해 3만 5천장의 독립선언서 전량을 찍었던 인쇄소인 '보성사'가 이곳 활판인쇄박물관 내에 세트로 구현되어 많은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보성사는 이후 독립선언서 인쇄 사실이 발각되어 일제에 의해 모두 불태워지고 이종일 사장이 3년 동안 옥살이를 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일제의 탄압으로 인한 민족의 고난 속에서도 독립을 위한 선조들의 노력과 희생정신을 추모하고 나아가 독립운동의 가치와 애국정신을 고취시키는 데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이다.

_활자 종주국으로서의 위상과 옛 인쇄 기법의 역사를 다시 세우는 노력 필요해
하루에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수많은 책들이 출판되고 인터넷이나 휴대폰을 이용해서도 손쉽게 글을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금속활자와 같은 전통 인쇄술에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는지도 모른다. 책이 흔하다 보니 그 중요성이 퇴색되어가는 듯하지만, 지금의 인쇄기술 역시 목판인쇄와 금속활자 인쇄를 통해 발달되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활자를 살려서 다시 쓰는 활판인쇄술을 살리고 우리 활판인쇄 고유의 문화를 계승하는 일은, 우리가 가꾸고 지켜나가야 할 창의적인 정신의 힘을 키우고 넓히는 일이다. 한 번쯤은 고민해보자,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읽고 기억하고 생각해야 할 것인가.
                                                             
활판인쇄박물관 ☎(031)955-7955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445
www.letterpressmuseum.co.kr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사소개 | 오늘 방문 120| 하루 평균 83| 방문 누계 293657
48932 부산 중구 복병산길61번길 3-1 (대청동1가 30-3) 동아빌딩3층 / 전화 (051)464-6626 / 팩스 (051)980-6826 / 웹하드 ip6626 / 메일 ip6626@naver.com
Copyright(c) since 2005 인쇄마당 renewal 2014년8월15일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