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역사 > 기록문화의 생성

(1) 문자의 발행

인쇄는 인류사회에서 문자가 생겨나 기록문화가 생성된 이후, 이러한 기록들을 보다 간편하고 신속하면서도 대량으로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겨나서 발전하였다. 인류는 처음에 음성이나 몸짓 등을 거쳐 일정한 체제를 갖춘 언어로 의사를 소통시켰다. 그러나 언어는, 음성이 전달되는 제한적인 공간에서만 소통이 가능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기억력 범위 안에서만 유지될 뿐이었다. 따라서 사회가 점차 발달하면서 정보전달 요구가 다양해지자 보다 확실한 전달과 보존의 필요에 따라 생겨나게 된 것이 문자이다. 문자가 사용되고 기록물이 등장하는 시점에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구분하는데, 인류는 이미 문자가 생겨나기 전인 선사시대에도 의사의 전달과 보존을 위한 여러 가지 표현 방법을 고안해 사용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래 된 것이 매듭을 지어 의사 표시를 했던 결승문자였다. 이는 새끼의 개수나 간격에 따라 수를 나타내고 빛깔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나 추상적인 관념까지도 표현하였는데, 지금도 남미의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서 보다 발전하여 그림문자가 생겨났다. 이는 나무나 돌 등에 그림을 그려 좀더 편리하고 합리적인 의사소통 수단을 개발한 것이다. 그림문자는 직접적이면서도 구체적이고 다양성이 있으며, 무엇보다 기록성이 있어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다.

원시인들은 암벽이나 동굴 등에 그림을 그려 기록으로 남겼다. 그림문자는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크로마뇽인들에 의해 그려진 프랑스 남부의 알타미라 벽화가 유명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암각화의 형태로 울산 반구대 등에 남아 있다. 그림문자의 의미를 보다 구체화하고 보편성을 갖게 하기 위해 고대 사람들은 상형문자를 고안해 냈다. 이 상형문자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최초의 문자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상형문자 중 가장 오랜 것은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에서 사용된 설형문자이다. 이는 그림문자에서 발달한 것이지만 고대 이집트의 신성문자와는 다르며 서사 재료로 점토판을 사용했다. 기원전 1천년 경에 페니키아 사람들은 설형문자를 더욱 간소화시켜 오늘날 알파벳의 기원이 되는 문자를 만들어 냈다. 이집트인의 상형문자는 기원전 3천년 경에 생긴 것으로 초기에는 돌에 새겼지만 새로운 서사재료인 파피루스를 개발하여 여기에 기록하게 되었다. 이처럼 그림문자는 설형문자나 한자와 같은 상형문자인 표의문자로 진화되었고, 설형문자는 더욱 간소화되면서 발전되어 알파벳과 같은 표음문자로 변천하였다. 문자는 이처럼 오랜 시일과 과정을 거쳐 형성되면서 지역이나 필요에 따라서 다양한 종류가 생겨났다.

(2) 인쇄술 이전의 기록방식

문자가 생겨나 널리 사용되고서도 인쇄술이 출현하기 전까지 기록을 하기 위한 방식으로는 필사가 유일한 것이었다. 동양에서는 불교가 생겨난 이후 이를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많은 불경이 필요했는데, 이러한 불경은 모두 손으로 베껴 쓸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손으로 베껴 쓴 불경을 사경이라고 하는데, 사경을 제작하는 일이 공덕을 쌓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서양에서도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는 필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는 규모가 튼 수도원에 서사실이 있어 주로 수사들이 책을 베끼는 일을 하였는데, 이들은 영리를 목적으로 고용된 필사 노예들과는 달리 신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환으로 성서 등을 복제했기 때문에 정확성과 장엄함이 존중되어 호화스러운 채식사본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뛰어난 채식사본의 경우 금색이나 은색 등으로 색칠하여 정교하게 그려졌으며, 양피지를 손질하고 필사를 하며, 제본을 담당하는 등 각 분야별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다.

(3) 서사재료의 개발

종이는 중국에서 2세기 초에 처음으로 만들어졌으며, 종이 발명 이전에도 여러 가지의 서사재료가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거북의 껍질이나 동물의 뼈를 이용하다가 점차 돌이나 도기 등으로 발전하였고 조개껍질이나 양피지가 일부 사용되기도 했으나, 동양에서는 죽간과 목독을 널리 사용하였다. 죽간은 폭과 크기에 있어 종류가 다양했으며, 같은 크기의 죽간을 나란히 세운 다음 가로 방향을 실이나 가죽끈으로 묶어 오늘날의 발 모양과 같은 책을 만들었다. 목독은 나무로 만든 조각으로 대개 30cm 정도의 정방형이 많지만 다양한 모양이 전해지고 있는데, 관청에서 문서를 기록하거나 일반인들이 편지를 쓰는 등 폭넓게 사용되었다. 그리고 비단은 원료가 귀하고 값이 비싸서 특수 계층에서만 일부 사용되었다.

한편, 서양에서는 바위나 동굴의 벽, 짐승의 뼈, 돌 조각 등이 사용되었으나 고대에는 점토판이나 파피루스가 사용되었으며, 양피지는 12세기 경까지도 널리 사용되었다. 점토판은 주로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설형문자를 기록하였으며, 진흙을 알맞은 크기와 형태로 빚어서 나무나 쇠붙이로 된 철필로 문자를 새긴 다음 불에 굽거나 태양 빛에 말렸다. 파피루스는 나일강 유역에 자생하는 다년생 식물의 줄기를 잘게 쪼개 밀착시킨 것으로 보존하는 데는 적당치 못하였다. 그러나 이는 제지술이 서양에 전해지기 전까지 가장 보편적인 서사재료로 사용됨으로써 종이를 의미하는 영어의 paper나 독일어의 papier, 스페인어의 papel 등의 어원이 되었다.

양피지는 소나 양의 가죽으로 만들어 질기고 부드러웠는데, 기원전 500년 경부터 팔레스타인과 페르시아 지역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여 제지술이 전래되기 전까지 유럽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양피지는 파피루스의 최대 결점인 약한 내구성을 해결해 장기 보존을 가능하게 했지만 값이 비싸고 재료로 한정되었다. 따라서, 수요가 많아진 8세기부터는 가격이 점차 오르자 옛 문서의 내용을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쓴 이중 사본도 성행하였다. 양피지는 또한 파피루스의 두루말이형에서 오늘날의 도서와 같은 책자본 형태로 전환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책자본은 양피지를 네모나게 자른 다음 쪽 배열을 한 것인데, 이는 현대의 책과 같은 특징을 갖추게 되어 제책 분야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종이는 105년에 중국 후한의 채륜이 나무껍질과 마, 헝겊, 어망 등을 물에 불려 찧어서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오늘날의 제지법과도 그 원리가 같다. 초기의 종이는 단순하고 트박한 섬유의 그물에 지나지 않았으나, 기술이 진보하면서 먹을 잘 흡수하도록 표면에 아교풀이나 녹말풀을 먹이고 석고를 입혀 회게 한 제품도 나왔다.

이러한 개량은 제지술이 아라비아에 전해지기 전에, 그리고 목판 인쇄술이 생겨나기 전에 이미 이루어졌다.

제지술은 발명된 지 약 5백년 후인 593년 고구려 영양왕 때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으며, 일본에는 고구려의 승려인 담징에 의해 610년에 전파되었다. 그러나 서양에는 그보다 휠씬 뒤인 12세기에 이르러서야 전파되었다. 당나라와 사라센 제국과의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간 중국인 제지 기술자에 의해 757년 사마르칸트에 처음으로 제지공장이 세워졌다. 제지술은 그후 12세기 경 무어인에게 전파되어 스페인에 전해짐으로써 유럽 지역에도 처음으로 제지공장이 생겨났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거쳐 독일이나 영국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출처:대한인쇄조합연합회 4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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