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역사 > 인쇄술의 출현

(1) 인쇄의 원류

문자가 발명되어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게 되자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방식이 필요해졌다. 사회의 발전에 따라 기록 또한 대량으로 오래 보존하는 방법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인쇄술이 생겨났지만, 인쇄술은 오랜 세월과 다양한 기록방식을이 생겨나 활용되고 개선되었다.

기원전 5천년 경부터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지역에서는 나무나 금석등으로 만든 둥근 통에 문자나 그림을 새긴 후 점토판 위에 올려놓고 압력을 가하면서 굴려서 찍어내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기원전2700년 경에는 중국에서도 사용되었다. 이 방법은 잉크와 종이 대신에 점토판을 이용하였지만 복제 수단에 있어서 인쇄와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는데, 이는 압인법의 기원이 되었다.

이러한 압인법이 더욱 발전하여 중국에서는 인장을 출현시켰는데, 한자의‘인’이 오늘날에도 인쇄와 인장의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이다.

한나라 때는 이 연장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당시의 인장은 음문으로 새겨져 있어 붉은색 인주를 찍어 날인하면 글씨는 하얀색이고 바탕은 붉은색이 되었다. 5세기경에 이르러 문자를 양각하는 방법이 고안되었으며, 이는 목판 인쇄를 출현시킨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목판 인쇄술이 발명되어 서적을 간행할 수 있게 된 것은 인장보다는 비석에 새겨진 글자 위에 종이를 놓고 헝겊 등에 먹물을 묻혀 가볍게 두드려서 찍어낸 방법이 보다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처음부터 복사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서사재료로 석면을 이용한 데서부터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처음부터 복사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서사재료로 석면을 이용한 데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동·서양에서 모두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다.

돌에 새겨진 글자나 그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기원전 2400년 경에 조각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의‘센드의 석문’과 기원전 800년 경의 중국의‘석고문’이 있으나 이들은 모두 석면에 글자를 새긴 것에 불과하여 탁본의 연원으로는 볼 수 없으며, 후한의 희평 4년(175)에 경전을 석면에 조각하여 탁본했다는 것이 믿을 만한 기록이다. 이와 같은 탁본은 목판 인쇄와 비슷하지만 비문은 나무에 양각된 것처럼 볼록한 것이 아니고 돌에 음각되어 오목하며, 비면과 닿지 않은 종이의 표면에 먹을 칠하므로 비문이 거꾸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탁인법의 기원이 되었다.

날염법은 종이가 발명된 이후에는 천 대신 종이를 사용하였고, 그림과 무늬 대신 불경과 문자까지 찍어내는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이 방식은 압인법보다는 훨씬 발전된 것으로 인쇄와 가장 유사한 것이었다. 이러한 인장과 탁본, 날염법 등을 사용한 복제기술은 더욱 발전하여 목판 인쇄술을 출현시키는 토대가 되었다.

(2) 목판 인쇄술의 발명

중국의 목판 인쇄 기원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북송의 심괄이 저술한 《몽계필담》에 “당 때 목판 인쇄를 했으나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고 오대 때 처음으로 목판 인쇄가 되고 이어서 모든 서적이 인행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구드리치(Goodrich)는 카터(Thomas F. Carter)의 《중국 인쇄술 발명과 서방 전파》의 개정판을 내면서 목판 인쇄가 시작된 시기에 대해 “개원의 치세 소리를 들은 당의 전성기를 이룩한 현종(재위 712~756년) 때로 추정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목판 인쇄술 초기에는 판본에다 글씨만 새겼으나 점차 그림을 새긴 것도 나타났다. 또한 혹구와 어미를 새긴 것도 나타났는데, 이러한 것들은 각판 연대를 알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주고 있다. 인쇄판을 만든 주체 또한 처음에는 주로 관서였으나 점차 사찰에서 만든 사찰판이나 민간인이 만든 사가판 등으로 확대되었고, 나중에는 판매를 목적으로 한 방각판까지 나오게 되었다.

목판 인쇄는 유럽으로도 전파되어 카드나 성화 등의 인쇄에 많이 활용되었다. 유럽에서의 목판인쇄는 서책을 만드는 것보다는 주로 미술분야에서 이용되었는데, 1423년의 <성 크리스토퍼의 도하>와 1560년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목판 인쇄물의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한편, 목판 인쇄술이 생겨나 더욱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먹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먹의 역사는 확실하지 않으나 그 기원은 종이의 발명보다 훨씬 앞서 목간이나 죽독 등에 필사를 할 때부터 널리 사용되었다. 이러한 먹은 목판을 인쇄하는 데 매우 적합하여 인쇄물 자체가 선명하고 잘 지워지지 않는 특징을 지니고 있어 널리 사용되었다.

(3) 활자 인쇄술의 발명

활자 인쇄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송나라 때 심괄이 저술한 《몽계필담》에 북송의 경력년간에 필승이 교니, 즉 찰흙을 사용하여 활자를 만든 과정과 인쇄 방법에 대해 상세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 활자는 먹이 잘 묻지 않아 오래 사용되지는 못했다. 원 인종 2년에는 왕정이 자신의 저서인 《농서》에서 목활자를 만드는 방법과 함께 인쇄를 할 때 활자의 배열 방법. 회전대의 제작, 활자의 선택, 인판의 제작과 활자 고정 방법. 먹의 선택과 인쇄 방법 등에 대한 기록을 상세히 남겼다.

그러나 금속활자를 처음으로 만들고 발전시킨 것은 우리나라였다. 금속활자에 관한 최초의 기술은 고려 때 이규보가 저술한 《동국이상국집》에 나오는데, 《상정예문》50권 28부를 금속활자로 인쇄하였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 책들은 현재 전해오지 않고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금속활자본은 우왕 3년(1377)에 간행된《불조직지심체요절》이며, 1392년에는 활자의 주조와 서적의 인쇄를 전담하는 서적원까지 창설되었다.

금속활자는 조선시대에 많은 발전을 하였다. 태종 3년(1403)에는 주자소를 설립하여 계미자를 만들고, 세종 때에 들어와서는 보다 개량된 경자자와 갑인자를 만들었으며, 이후에도 수많은 금속활자가 만들어졌다. 이들 금속활자는 중국으로 역수출되고 일본에도 전해져 이들 국가의 인쇄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한편, 서양의 활자 인쇄술은 독일의 구텐베르크(Johann Gutenberg)가 1440년대에 납활자를 만들어서 활판 인쇄를 시작한데서 비롯됐다. 물론 서양의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 이전에도 금속세공사들이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으며, 제본업자들이 책 등에 금박을 찍기 위해 활자를 만들었으나 이들은 강도가 너무 강해 대량 인쇄에는 부적합한 철활자였다. 그러나 구텐베르크의 납활자는 남과 주석, 안티몬 등의 합금을 사용하여 낯은 온도에서 쉽게 주조할 수 있어 실용적이고 경제적이었으며, 놋쇠의 거푸집과 자모를 고안하여 금속 판면에 잘 묻는 유성잉크를 사용함으로써 인쇄에 적합했다. 납활자는 근대 인쇄술의 획기적인 혁신을 가져 왔으며, 오늘날의 대량 인쇄시대를 맞이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출처:대한인쇄조합연합회 4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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